이미지 출처 : http://program.tving.com/tvn/mymister
정말 본방사수 하며 감동 깊게 보았던 몇안되는 인생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대한 리뷰가 있어 링크/스포를 포함하여 남깁니다.
*극중한마디*
동훈(이선균) : "할머니 돌아가시면 전화해. 전화해. 꼭..."
네이버 블로그 "감성혁명"님의 "나의아저씨 리뷰"글 입니다.
수요일 밤을 꼬박 지새고
"나의 아저씨" 14화를 두 번 본 후
감정적, 심리적으로 완전히 탈진했습니다.
술의 힘을 빌려 죽은 듯이 잠을 잤습니다.
꿈도 꾸지 않고...
눈을 뜨자마자 바로 그들부터 떠오르니
이 정도면 중병(重病)을 앓는 것 같습니다...
동훈은 자신을 떠난 지안을 찾아 헤맵니다.
뒤늦게 걸려오는 지안의 전화.
공중전화박스 속의 지안과
어둡고 불안해보이는 거리의 동훈이
화면분할과 클로즈업으로
우리의 가슴을 후벼팝니다.
"이지안이에요."
"알아. 일찍도 전화했다. 너 어디야. 어디야!"
"강남이요. 새로 일하는 데..."
"그만두면 그만둔다고 얘길해야 될 거 아니야."
"그만둔다고 하면 뭐 사람 죽인 애
송별회라도 해줄 건가?
무서워서라도 하루 빨리
조용히 사라지길 바랄 텐데.
상관없어요.
어차피 오래 못 다닐 거 알았으니까.
한 두 번 있는 일도 아니구."
"센 줄 알았는데.
그런 거에 끄떡없을 줄 알았는데."
"지겨워서요. 나보고 신나할 인간들..."
"미안하다."
"아저씨가 왜요. 처음이었는데...
네 번 이상 잘 해준 사람...
나같은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 이제 다시 태어나도 상관없어요.
또 태어날 수 있어. 괜찮아요.
우연히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건가?"
"......응......
할머니 돌아가시면 전화해. 전화해. 꼭..."
"끊을게요..."
문자나 일방적인 도청이 아닌,
동훈과 지안의 첫번째 통화가 이별의 통화임은
참으로 비극적인 아이러니입니다.
동훈은 숨소리 만으로 가슴 속에서 웁니다.
기훈의 바람대로 속을 다 까 뒤집지 못하고
또 꾹꾹 눌러대면서...
당장 돌아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오백 번을 태어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싫고 지겹다던
삼만살 지안은
새로운 삶을, 오백 한 번째 환생을 꿈꾸며
후미지고 위험하며 더럽고 외로운
도시의 한 구석으로 몸을 숨깁니다...
그리고는 동훈의 상무 승진 확정...
다른 누군가의, 그것도
드라마 속 등장인물의 승진이
어떻게 내 자신의 승진보다
더 감격적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직업적 사명감과 정의로운 시민정신과
식구들에 대한 속 깊은 사랑과
부하직원들, 이웃들을 향한 연대의식으로
양심(良心)을 지켜낸 한 인간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승리이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그 축복의 순간에, 축복의 자리에
지안은 없습니다.
가장 함께 하고 싶었을 사람인데...
형제들(자연히 어머니), 아내, 아들,
그리고 지안의 순서로 연락을 하죠.
그녀에게 연락할 방법이 끊어졌음을 압니다.
정희네에서의 축하의 시간,
어머니, 아내를 차례로 귀가시키면서도
틈틈이 시선을 돌려 지안을 찾지만
그녀가 나타날 리 없습니다.
"아득히 먼 곳"에 있을 지안을 노래하는 동훈과
"아득히 먼 곳"에서
동훈의 노래를 듣는 지안의 외로움...
그리고 그리곤...
박동운 상무를 통해 알게 된 사건의 전말...
하나하나 맞추어지는 퍼즐조각들과
동시에 밀려드는 수천 가지 감정들...
준영의 발악을 들으며 동훈의 뺨에 흘러내리던
한 줄기 눈물...
"나만 천박했지? 니들은!"
영화관 스크린 속에는
1980년 5월의 광주(光州),
그렇게 지켜주고 싶었지만
자신의 총탄을 맞은 이름모를 소녀의 시신과
그 시신을 안고 울부짖는 영호의 절규가 있습니다.
역(逆)통신...
"이지안... 이지안... 전화 줘..."
지안의 고시원 골방, 작은 책상 위
커피포트의 물이 끓어 오릅니다.
다음은
2017년 11월 3일에 올린,
'이창동' 감독 리뷰 속 <박하사탕>에 대한
제 언급입니다.
그의 영화는 리얼리즘,
그것도 가혹한 현실의 쓰라린 생채기를
드러내서 후벼파는 리얼리즘에 기반하기에,
게다가 관람 후의 여운과 파장이 너무 크기에
차마 다시 볼 엄두가 나지 않지만,
마치 마음에 새겨지는 문신처럼
한 번만 봐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으므로
굳이 재관람의 수고를 감수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순수와 타락,
진실과 편견,
성(聖)과 속(俗),
분노와 용서,
절망과 구원,
무지와 각성이라는 두 세계의 경계선에서,
또는 그 두 세계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뇌하고 분투하는 등장인물들을 그려내며
그 두 세계를 빛과 그림자로 은유하는 것이
이창동의 작품들이 가지는 공통분모입니다.
완벽에 가까운 시나리오,
간결하면서도 치밀한 대사,
캐스팅의 놀라운 안목,
촬영과 연기의 장악,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주제의식이야말로
이창동 감독 작품의 미덕이죠.
<박하사탕> (1999)
역사가 개인에게 남긴 이토록 혹독한 상처,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대한 이토록 통럴한 비판,
일곱 개의 챕터를 역주행해 달려 도착한
1979년이란 역에 존재했던
그토록 순수했던 젊은 영혼들...
'영호'의 '설경구', '순임'의 '문소리'...
이 훌륭한 두 배우의 무려 데뷔작이다.
영호의 눈빛이, 영호의 얼굴이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보아라.
순임의 죽음 옆에 결국 전하지 못한 박하사탕...
영화의 등장인물들 중
나는, 당신은 누구의 삶을 살고 살았는가...
죽기 전 문득 떠오를 영화가 있다면
아마 그것은 박하사탕이 아닐까...
다시 동훈에게로...
동훈의 유일한 친구인 겸덕은
면벽참선(面壁參禪)에 들어갑니다.
"얼마나요?"
"몰라."
언제부턴가 제겐
동훈과 겸덕이 하나의 인물로 겹쳐보였습니다.
등 뒤에서 따뜻하게 동훈을 안아주던 겸덕...
이제 그들은
그들 인생에서 마주한 최악의 마음의 지옥에서
각자 사투를 벌일 겁니다.
그 고독한 사투 끝에 그들이 도달할 천국이
부디 용서(容恕)이길 바랍니다.
그 용서는...
천근만근 짊어진 삶의 업보(業報) 속에서
논리가 아닌 마음을 따라
자신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외롭지만 뜨거운 삶을 살고있는,
지안과 정희, 동훈과 겸덕을 포함한,
바보처럼 불쌍하고 바보처럼 착한,
모든 사람들의 삶을 향한 용서입니다.
영호는 순임의 죽음 후 자신을 죽임으로써
순수의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우리의 동훈은
지안의 영혼이 더 상처받기 전에
지안의 영혼에게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곤 그녀에게 빚진
뜨겁디 뜨거운 포옹을 돌려줘야 할 채무를
이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동훈이 지안에게 돌려줘야 할
박하사탕입니다...
그러길, 제발 그럴 수 있길...
지금 제 뺨을 흘러내리고 있는
뜨거운 눈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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